살아가면서 갑이 돼 본 적이 없어서 갑질은 어떤 건지 잘 모른다. 하지만 딱 하나 꼴불견인 건 을이 갑질을 하는 게 갑이 갑질을 하는 것보다 더 어이없다는 것이다. 못된 시어머니를 만나면 똑같이 자기 며느리에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난 갑이 되어도 받음만큼 똑 같이 못 한다. 그건 천성인 거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을이 갑질을 할 때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본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항상 을이었기 때문에 뭐든 내 잘 못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원망하고 사과하기 급급했는데, 사회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당연 을이라도 갑에게 계속 당하고 살라는 법은 없고 갑도 계속 갑질을 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간다. 지금은 회사에 내가 이끌어야 할 팀이 있다. 협력회사 직원 중에 이번에 한 분이 그만두면서 새로운 사람을 뽑았는데, 대학원 박사 과정을 스코틀랜드의 어느 대학의 박사 교환 연구원으로 왔다가 영국 남편을 만나 눌러앉게 된 분이 입사하였다. 박사 논문이 통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객에서는 고학력의 사원이 입사했다고 좋아하는 눈치다.
인터뷰할 때부터 같은 업계의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뽑는다는 게 석연치 않았는데, 그리고 경력의 대부분이 아카데믹 쪽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티칭 어시스턴트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매주 하는 세미나 강사로 채용했는데, 세미나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하는 데 엉망이었다. 전에 계신 분은 정말 자료를 잘 만들었던 것도 있지만, 논문을 썼다는 사람이 목차를 적어서 그 스토리대로 자료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에 너무 화가 났다.
인수인계할 때 그만 두실 분이 같이 도와 준건지 한 달 인수인계 동안보다 그분이 혼자 세미나 자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 자료를 체크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걸 느꼈다. 어제는 말도 안 되게 자료를 만들어 와서 그걸 지적했는데, 오히려 이 사람 적반 하장이다. 내 코멘트에 목적어가 없어서 이해를 못 해서 고치기 힘들었다고 그것도 관계자들이 다 보는 채팅에 그렇게 답글을 올렸다. 어디 부분에 어떤 목적어가 없어서 그리고 자기의 글엔 목적어가 모두 있었는가? 이 사람 바보 아닌가 싶었다.
용감하다. 솔직히 이 사람 미친 게 아닌 가 싶었다.
어떻게 그런 발언을 모두가 보는 곳에 쓸 수 있을까, 자기의 무능력을 돌아보지 않고, 난 그분 자료를 보고 고칠부분에 대해서 코멘트 다느라고 손가락 빠지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자기의 동료도 아니고 설사 아니 부하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부하라도 어이없는 발언인데, 얼마나 내가 우스우면 그런 발언을 하겠나 하는 생각과 다른 한 편으론 모르면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이건 잘 모르겠다 설명을 해달라고 해야 하는 것인데 대 놓고 싸움을 걸고 있다.
이래서 마냥 고학력자는 안 뽑는 것 같다. 나도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Distinction도 받아 봤지만, 박사라고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 안 한다. 단지, 공부를 더 긴 시간 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 분은 논문이 통과됐을까 의심스럽다. 아니면 발로 쓴 게 아닌가 싶다. 목차를 스토리 흐름대로 적고 목차대로 스토리를 적지 못 하는 사람이 무슨 변명이 그렇게 긴지, 그리고 다시 고쳐 온 자료에도 또 모순을 발견해서 지적했더니, 다른 사람 탓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 탓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잘 못 했어도 자기 자료로 올리려면 다른 사람 잘 못까지 체크해서 바로 고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도 당신의 답글이 이해가 안 가서 서로 글로 얘기해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고 보냈다. 그러면 알겠다 서로 조심하자가 아니라, 돌아오는 건 앞으로 혼자 착각하고 당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피해달라고 답글이 왔다. 방금 전까지 남탓한게 누군가 왜 자신의 얘기를 나한테 갖다 부치는 가! 처음에 상식 없는 발언을 했을 때 놔뒀던 게 문제인가. 갈수록 태산이다. 나이로 보나 사회 경력으로 보나 비즈니스 관계로 보나 내가 자기보다 선배고 언니고 갑인데 이 사람 학교에서 교수들한테 귀여움만 받고 살았나!
정말 제대로 돌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갑이 되고 보니 을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나 보다. 그래서 회사에선 혼자 똑똑한 사람 하나도 필요 없고 말 잘 듣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절실히 느낀다. 지난날 보스에게 따박따박 말대답하던 시절을 반성한다. 하지만 난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예의 없이 가릴 데 안 가리고 막 말하는 사람이다. 난 보스에게 합당하지 않은 지적을 당했을 때도 한 번도 그런 말투로 대응해 본 적이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이로울 게 없는 그런 발언을 당당히 모든 사람이 보는 채널에 답글을 다는 이 무식한 행동은 무엇인가. 젊음의 패기인가? 한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혼자서 하루 종일 불쾌했다. 그 사람이 올린 자료 그대로 고객에게 제출하면 고객에게 체크했냔 소리 들을 게 뻔하고 고치라고 시간 내서 알려주면 곱같게 생각하고, 을이 갑질을 하려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지혜가 필요하다.
아~~ 진정한 갑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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