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피렌체 플로렌스 세계유산의 도시 메디치 가문의 비밀통로

반응형

이탈리아는 너무 유명해서 다녀오신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보다 더 알차게 여행하고 오신 분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인 여행의 내용을 가미한 피렌체의 역사와 같이 적어 볼까 한다. 런던에 놀러 온 한국어를 좋아하는 이탈리아 친구가 피렌체, 즉 플로렌스 출신이다. 그 친구가 잠깐 런던에 들렀지만 우리 집에도 초대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덕에 피렌체에도 초대해 주었다. 피렌체 지명 영국에서는 플로렌스라고 더 많이 한다. 플로렌스는 알다시피 영어식 지명 이름이고 피렌체는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영국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편하게 바꾼다. 흥!

그렇게 간 플로렌스, 다른 한국 친구 중 워킹 홀리데이로 왔다가 간 친구도 거기를 갔다 오더니, 그렇게 좋았다고 가보라고 하였다. 사실 정말 아름다웠다. 여기를 보고 왜 그렇게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 알았다. 지금부터 밑에 보이는 사진들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찍은 피렌체 시내 모습이다. 정말 아름답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할 만하였다. 사실 내가 이렇게 유럽에서 세계유산을 몇 번 보다 보니, 이제는 좀 감각이 왔다. 세계유산이겠거니 한 것이. 그리고 1869 년 피렌체는 그 당시 이탈리아의 수도였다고 한다. 수도였다고 하니 이렇게 화려 하구나 납득이 갔다.

피렌체 시내 1

 사실 이 지붕 색깔이 다 갈색으로 똑같은 이 느낌이 프랑스 리옹과 정말 비슷하다. 나중에 프랑스 리옹의 여행 얘기도 올릴 텐데 그때 비교해 보았으면 좋겠다. 프랑스 리옹도 세계유산이다. 참 웃겼던 것은 그곳 출신의 친구는 자기 도시가 세계유산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니네 도시 세계유산이지 했더니 아니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정말? 맞는 거 같은데 하고 구굴 해 보고 위키피디아 정보를 보여 주니 자기도 모르던 사실이란다. 그 도시에서 태어나서 살고 자란 친구인데 그걸 몰랐다는 것은 세계유산이 너무 많아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세계유산이 있는가. 나는 모른다. 신라 고려 시대부터 계속 전쟁의 역사인 한국은 오래된 건물 조차 다 불태워지고 제대로 보존된 것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새것을 좋아하다 보니, 오랜 건축물의 가치를 못 느끼는 것 같아. 아쉽다.

피렌체 시내 2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늦은 낮에 도착해서 점심 겸 빠른 저녁을 먹고 플로렌스 시내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 광장 밑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그 레스토랑이 좋은 건 레스토랑이 사진 찍기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이 아닌 사람은 레스토랑 바깥 파라솔 테이블과 의자 쪽으로 못 오게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방해 안 받고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광장 바로 밑에 있다. 레스토랑 이름은 La Loggia Del Piazzale Michelangelo 이름도 참 길다. 그래서 그 레스토랑에서 올려 다 보면 위에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거기서 먹은 크림 시푸드 스파게티가 맛있었던 것 같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서서히 라이트업 하기 시작했다. 신났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발 걸음을 돌릴 수가 없어서 명상에 잠기며 조용히 플로렌스 도시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가끔 한방씩 사진을 찍어주며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야경까지 찍고 나서 만족하였다.

피렌체 시내 야경 
피렌체 시내 야경 2
피렌체 시내 야경 3
피렌체 시내 야경 4
피렌체 시내 야경 5
피렌체 시내 야경 6

 그리고 다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돌아올라 왔다. 미켈란젤로 광장을 가는 길은 플로렌스 다운타운에서 걸어서 30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광장으로 올라가려면 계단을 많이 올라 야 한다는 것이다. 약간 힘듦. 밑에 다운타운에서 가는 지도를 올려본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대성당 가는 길

 미켈란젤로 광장은 건축가 주세페 포기 (Giuseppe Poggi)가 디자인하였다고 한다. 또한 밑에 보이는 것이 David 동상인데 이 David동상도 주세페 포기가 1869년에 디자인했다고 한다. 다빈치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거의 400년 후에 지어졌다.

미켈란젤로 광장 데이비드 동상

 또 하나의 플로렌스의 명소, 플로렌스의 상징인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이 성당 건축물은 정말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다자인이었다. 밤에 갔는데도 어찌나 조명을 잘해 났는지, 사진을 찍기에 건물이 너무 선명했다. 이 대성당은 위에 지도에서도 보일 것이다. 다운타운에서 가깝다. 이 건물은 1296 년에 고딕 양식으로 Arnolfo di Cambio 의 디자인으로 짓기 시작해서 1436 년에 맨 위에 있는 돔을 Filippo Brunelleschi가 설계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140년에 걸쳐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성당의 외관은 사진 상 흰색과 갈색으로 보이나 흰색과 경계를 이루는 면에 녹색과 분홍색의 다양한 색조의 다색 대리석을 대면하게 설계되었다. 자세히 보면 정말 초록과 분홍색이 보일 것이다. 이 대성당은 세 개의 건축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세 건물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당 단지에는 세례당과 지오토의 종탑이 있는데, 돔이 있는 건물이름이 피아자 델 두오모 (Piazza del Duomo)이고 세례당인 Baptistery,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이 종탑인 Giotto’s campanile이다. 이 세 건물들이 모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대성당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이며, 그 당시에는 가장 큰 돔으로 알려져 있었고 그것은 또한 지금까지 지어진 가장 큰 벽돌 돔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피아자 델 두모
대성당 피아자 델 두모 옆에서
지오토 종탑

 그리고 또하나의 플로렌스의 명소를 소개한다. 여기는 이탈리아 친구가 정말 입이 달토록 나에게 설명한 장소이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플로렌스 토박이 출신이다. 플로렌스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꽤 자부심도 있었던 가 보다. 자 그럼 그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피렌체는 아까 말한 대로 1800년대에 이탈리아의 수도였지만 그전에 이 도시에 영향을 행사한 피렌체 도시를 발전시킨 일등공신의 가문이 있다. 그것은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피렌체 도시를 통치하였는데 그들의 영향력으로 이 도시의 경제 및 문화가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그들은 예술과 인본주의에 대한 후원을 통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메디치 가족은 양모 상인과 금융사업을 하였고, 두 사업 모두 수익성이 좋아서 그 가문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었다.

 

왜 이렇게 메디치 가문 이야기를 하냐면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배제하고는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래에 보이는 사진은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 형태들이다. 다리 위에 지어져 있는 집들이 보이는 가. 저 집들은 지금 가정집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주얼리 상점들이다. 

본테 베치오 다리

 상점과 가정집이 같이 되어 있는 곳도 간혹 있다고 한다. 다리 반대쪽에서 보면 상점의 뒷모습이 보이지만 다리 안쪽으로 다리를 건널 때는 양옆으로 상점의 정문을 마주하게 된다. 상점의 모습은 이 포스트의 가장 밑에 사진을 확인하라. 이 다리의 상점들을 지나가다가 다리 한가운데에서 강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있다. 위에 사진을 확대하여서 빨간 동그라미를 친 곳이 그곳이다. 사람들이 다리 위에 많이 서 있는 곳이 보이는가? 그리고 이 다리는 Ponte Vecchio로 불려진다.

본테 베치오 다리위의 풍경

 그렇다면 이 상점들이 어떻게 메디치 가문과 관계가 있는 가 하면 메디치 가족은 원래 다리 오른편에 궁전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메디치 가문의 공작 코시모 일세(Cosimo I)가 처음으로 다리 왼편의 다운타운 쪽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 왼편에서 살고 있는 코시모가 오른편의 궁정과 정원으로 갈 때마다 Ponte Vecchio 다리를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1565년에 그는 자기 저택에서 다리 건너편에 있는 궁전과 정원으로 이동해야 할 때 외부의 상황이 위험하거나 또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비밀 복도를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수석 건축가에게 다리 왼편의 그들의 저택으로부터 다리 오른편의 궁전과 정원까지 연결되도록 그 길에 있는 모든 가정집과 상점들의 위층에 복도를 만들게 하였다. 정말 그 가문의 위력을 과시하는 건축의 결과이다. 밑에 사진은 다리 건너편의 오른쪽 집들이다. 이렇게 남의 집들 위에 그 가족들 만의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니 그들의 부의 힘과 오만을 느낄 수 있다. 그 통로는 말도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높이 건축되어있었다. 그 비밀 복도가 500년가량 전에 지어졌다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보존되었을까.

본테 베치오 다리 옆 풍경
본테 베치오 다리에서 본 풍경
본테 베치오 다리 아래

 나의 MacBook Air에 있는 사진들을 제대로 관리 안 한 탓으로 사진을 찾을 수 없으나, 마지막으로 밑에 보이는 거리는 피렌체의 주얼리 상점 거리이다. 거리 이름은 Ponte Vecchio 피렌체에서는 고급 주얼리 상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도 원래 메디치 시대 초기에는 정육점을 비롯한 온갖 상점들이 다양하게 있었는데 공작 코시모가 말을 타고 이 다리를 지나갈 때마다 상점들 특히 정육점에서 나온 쓰레기가 강물에 던져져서 악취가 난다고 하여 오직 금은보석과 주얼리 상점만 들어서도록 법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Ponte Vecchio 거리는 금은보석 주얼리 가게들만 입점해 있다. 주얼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들러 볼 것을 추천한다.

본테 베치오 상점가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