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같이 일하던 협력사원 여직원 사치코가 아버지 건강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록그다운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식사나 하자고 해서 만났다. 참고로 영국은 이번 주 목요일부터 모든 레스토랑과 펍, 비필수 품목을 파는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이제는 야외 레스토랑도 다 문을 닫기 때문에 다시 답답한 날들이 시작된다. 12월 5일까지 한 달만 록그 다운한다고 하는데, 아마 겨울 내내 록그다운하지 않을까 모두들 예상하고 있다.
사치코를 만나러 가며 버스에서 잠깐 밖을 내다보니, 비바람 때문인가, 가을 낙엽이 다 떨어져 있다. 청소를 안 해서 막 떨어져 마자라 그런가, 수북이 도 쌓였다. 그런데 이쁘다. 언제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만남들, 이렇게 일본으로 돌아 가면 언제 또다시 만날까 생각하며, 잠깐의 인연이지만, 인사하고 싶었다.
비가 와서 밖을 걷고 싶지 않았기에 웨스트필드가 제격이라 생각했다. 사치코는 아무거나 다 먹는다고 나보고 레스토랑을 정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비도 오고 웨스트필드의 레스토랑 중에 정하기로 했다. 어디든 좋다고 하니, 옛날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멕시칸 요리 레스토랑 와하카 Wahaca로 정하였다. 예약하고 사치코에게 예약 정보를 전하니, 멕시칸 요리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버스가 많이 밀려 좀 늦었다. 들어가서 미리 주문하고 있으라고 전했더니, 깜찍하게도 먼저 한잔 하고 있다고 밑에 사진을 보내왔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했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한 나는 사치코가 시킨 스낵을 먹으며, 메뉴를 천천히 보았다. 사치코는 브로또가 좋다고 하였다. 그녀가 미리 시켜놓은 치즈 볼의 코리앤더 소스가 너무 맛있었다. 고수를 안 먹는 그녀 덕에 소스는 다 내 차지였다. 6개월가량 만나지 않았었는데, 어제 만난 듯하였다. 그렇게 그간의 일들을 캐치 업하였다.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한 일 년 정도밖에 같이 일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뜻밖의 사치코의 과거 경력을 들었다. 원래 영업사원을 계속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영국에 와서 이번 회사 전에 IT 소프트웨어 영업사원을 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IT 고객상담서비스 창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커밍아웃은 아니지만, 이렇게 들으니, 그녀의 캐릭터가 이해가 되었다. 어딜 봐도 IT 고객 서비스를 할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에 정말 납득이 가는 그녀.. 배경과 경험이 그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것인지, 성격이 그 사람의 직업과 경험을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것이 먼저 일까... 나는 어떤가..
레스토랑이 바빠 보이진 않았는데, 정말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도착하고 30분 이상은 방치되었다. 겨우 주문할 수 있었던 멕시칸 맥주, 멕시코 하면 코로나가 유명하지만, 정작 멕시코 사람들은 코로나를 별로 안 마셨던 기억이 나서, 토스트를 시켜 보았다. 필스너 라거라서 실패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웨이트리스 강력 추천의 버터밀크 치킨 타코스를 시켰는데, 웬걸 일본의 카라아게 맛이었다. 내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추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은 있었지만, 멕시코를 기억하게 해 주지는 않았다. 양파를 핑크로 피클 한 것이 마요네즈와 어울려져서 절묘한 맛을 낸다.
큰 브리또를 시킨 사치코와 반대로 난 타코스 하나를 더 시켰다. 이번엔 크랍과 아보카도를 섞은 타코스이다. 치폴레 덕에 톡톡 쏘는 매운맛과 역시 핑크 피클 어니언이 조화롭게 매운맛을 한층 더 돋워서 좋았다. 멕시코 하면 테킬라 아닌가, 매운 타코스에는 테킬라가 맞는 것 같아서, 테킬라를 한잔 시켰다. 테킬라 종류가 많았는데, 정말 조그마한 유리잔에 찔끔 원샷으로 나왔다. 레몬과 바닐라 시나몬 맛이 난다고 하였는데, 정말 한잔 입에 넣었을 때 그 모든 맛이 입안을 감쌌다.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치코와 그런 그녀가 영업을 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성격은 영업사원 그 자체인데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녀를 알게 되어 신기하기만 했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사치코는 초등학교 때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고, 한 반에는 10명 정도도 안 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한국에 일박이일 교환학생으로 갔다고 한다. 한국 학교의 학생의 집에서 하룻밤 홈스테이를 했다고 하면서 그녀의 이름은 수진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화장실 어디예요?"를 한국말로 하는 것이다. 오직 기억하고 있는 한국말 한 문장, 초등학생이니, 제일 중요한 말이기는 하다. 그리고 나도 잊어버린 가사 '나의 살던 고향은'을 몇 소절 부르는 것이 아닌가? 뜻은 모르지만 배웠던 기억이 난다며,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데, 또 한 번 놀랐다. 한국에 가면 꼭 연락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한국과의 인연도 들려준 사치코와 3시간이나 밀렸던 수다를 함께 하였다. 사치코가 술을 안 좋아한다고 하니 더 권할 수 없어서, 사이다와 맥주를 한 캔씩 비운 그녀와 슬슬 자리를 뜨기로 하였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식사 한 끼 해서 보내 게 되어 안심하였다. 언젠가 한국에 가면 꼭 연락하라고 하였다.
오늘은 여러분에게는 멕시칸 요리 레스토랑 와하카 Wahaca를 소개하였는데 점수를 주자면 8.5 점이지만 타코스와 테킬라가 그리우면 꼭 들러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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